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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 소개 및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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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양동(華陽洞)지역의 옛지명

화양동 옛지도

안골(안동네)-그림①

지금 광진구는 39만이 넘는 주민이 생활하는 터전이 되었다. 그러나 과거 2세대만(60년) 거슬러가도 마을의 모습은 전혀 생소한 그림이다. 화양동(예전 '모진동'은 지금 화양동으로 변경됨)은 현재의 모습처럼 건국대학교의 학교부지를 제외하고 주택이 빽빽한 모양이 아니었다.

주로 화양리 지역은 현재 화양동주민센터가 위치한 곳으로부터 느티나무가 위치한(화양동 110번지일대) 지역에 마을을 형성하였다. 약 100여호로 이루어진 마을은 8∼900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하였으며 이 지역을 '안골(또는 안 동네)'라고 불렀다.

안골에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동우물'이 2개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금 주민센터가 위치한 장소에는 해방을 전후해서 '야학당'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70세가 넘으신 마을 어른들의 증언에 의하며 이곳에서는 주로 중학교 과정을 가르쳤다고 하며 마을이 개발되면서는 한강 뚝방 공사를 위한 토목국 현장사무실과 자재 창고로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밖구목-그림②

밖구목

<화양정터 느티나무(1956) : 서울육백년. 김영상 지음 인용>

안골의 중심이 있던 느티나무와 뒤로 광진지역의 옛 마을 모습을 볼 수 있다.

안골과 인접한 마을로 지금의 화양동 35번지 일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안골보다 적은 인가로 형성된 마을로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동우물'이 1개 있었다. 특히 마을의 개발과 함께 서울의 중심부로부터 광나루로 연결된 전차가 마을을 지나갔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경에 개통된 전차는 초기 기동차였으며 후에 전기 전차로 바뀌었다. 현재의 화양동 119번지 앞의 골목 사거리 부근에 '화양역'이 있었다. 전차는 왕십리로부터 화양역을 경유하여 지금의 카페 골목을 가로질러 삼성제약 뒤편으로 지나갔다.

안선너머 골-그림③

안산너머 골

<지금은 카페 골목이 된 전동차 길>

너머골 안골에서 바라볼 때 한강을 향해, 지금의 민중병원 남동쪽에 형성된 작은 마을을 일컬어 '안산 너머골'이라 하였다. 지금은 능동로와 건국대학교 가 평평하게 되어있지만 도시가 개발되기 전 이곳은 인가가 크게 형성된 안골에서부터 능동에서 한강으로 가르는 길(사라진 옛 길이름 참조)을 경계로 다시 경사를 이루는 산세를 형성하였다. 안산너머골은 작은 마을이었다고 하는데 이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보리 깜부기를 칠한 모습을 보아 나환자들이 집단 거주하였다고 회고되어진다.

우렁목-그림⑧

우렁목

<지금은 재래시장으로 복잡한 곳이 된 우렁목>

화양동 한아름 쇼핑센터와 인접해 발달해 있는 재래시장이 '한아름 시장(현 화양제일시장)'이다. 이곳이 지금은 왕래하는 주민들과 시장을 이용하는 인파로 복잡하게 되어있는데 이곳의 옛 이름이 '우렁목'이라고 하였다. 이곳에는 한강 인근으로 접근하기 위한 길목으로 돌다리가 있었다고 전한다.

한아름 쇼핑센터와 우렁목(한아름 시장)이 만나는 삼거리(현재의 시민약국 자리)에 기와를 굽는 곳이 있었는데 이를 '개막'이라 불렀다. 개막이란 '기와'와 '막장(터)'가 붙어서 불려지다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장승-그림⑨

장승

<학교 부지로 변해버린 장승모퉁이>

지금 익숙해진 길을 지우고 과거 마을 사람들이 사용하던 길을 상상해 보자. 먼저 주요 도로인 능동로를 지우고 두 번째로 광나루 길이 없다고 상상하며 대신 작지만 흙으로 된 편안한 광나루 길과 건국대학교 민중병원 뒤편을 가르는 굽이굽이 이어진 야트막한 산길을 그려본다. 바로 그 길이 화양동의 중심마을인 안골과 자양동을 연결해 주는 마을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의 중간지점, 건국대학교 상허도서관에서 민중병원 주차장으로 연결시키는 부근이 될 것이다. 이곳에는 두 마을에서 함께 세워 놓은 장승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곳을 '장승 모퉁이'라고 불렀다.

이 길이 중요한 것은 마을의 공동체 행사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음력 시월 초하루가 되면 자양동 마을에 사는 사람들은 마을 신당인 '부군할아버지당'에서 제를 지내고, 화양동의 안골 사람들은 신당인 '부군 할머니당'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함께 올렸다. 두 마을간의 제사는 서로 교환이 되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마을의 대동제가 끝나고 서로 다른 당으로 이동을 하는데 바로 이곳 장승모퉁이를 경유하게 된다.

토박이들은 이곳을 지나는 길을 '제사길'이라고도 불렀다고 하여 두 마을이 서로 유사한 공동체 문화를 형성하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다.

 

 

   

<화양동 느티나무공원(1958)>

추정 수령 약 700년이 된 화양동 느티나무는 현재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화양동주민센터 맞은편에 공원으로 조성된, 이 느티나무가 서 있는 자리는 조선 세종 때 조정에서 건립하였던 화양정(華陽亭) 터이고, 세종 임금의 태평성대와 단종 곧 노산군(魯山君) 그리고 명성황후(明星皇后) 민씨에 얽힌 사연 등 다채로운 곳이다.
궁궐지(宮闕志)에 따르면 세종은 1432년(세종 14) 이곳 조정 목장의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방목한 말들이 떼 지어 노는 광경을 즐겼다고 했다.


기본현황 (2023년 11월 4일 기준)

화양동 주소,전화번호,면적,인구수 등 기본현황

동명

주소

전화번호

팩스

면적(㎢)

인구

세대수

화양동

광진구 능동로 17길 39
(화양동 122)

02-450-1515 02-411-1795 1.13
(구 면적의 6.6%)
23,080명 18,040 33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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