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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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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진구라는 명칭은 지금의 광장동의 광진교 주변의 넓은 곳에 나루터가 있다하여 「너븐나루」라고도 불리워졌던 「광나루」에서 유래되었다.

광진구 지역에 사람이 정착했던 때는 신석기시대이다. 백제가 아차산성을 축조한 286년(책계왕 원년)에 역사의 무대에 처음 등장하였다. 이후 고대의 교통 및 군사적 요충지로서 396년 고구려의 광개토왕이 아차산성을 함락시킨 이후 신라가 한강하류를 장악한 553년(진흥왕 14년)까지 삼국이 국운을 걸고 싸웠던 고대사의 현장이다.

고려 태조 때부터 정종때까지는 양주로, 문종 이후 충렬왕 때까지는 남경, 충선왕 이후 고려말까지는 한양부라고 불렸다. 당시 각 지방은 호족세력에 의해 통치되었는데, 양주지방에서는 뚜렷한 호족세력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고려 태조 왕건의 공격에 의해 이 지역이 점령된 후 고려왕조의 직할지가 되었다.

그 후 조선시대 광진구 지역은 경기도 양주군 고양주면에 속하였는데 이 곳은 국가의 군사용 말을 기르고 훈련하는 마장이 넓게 자리잡고 있어 임금이 수시로 나와 군사훈련을 참관하기도 하였다.

일제시대에는 경기도 고양군 뚝도면에 속하였으며 해방 후 1949년 8월 13일 뚝도출장소를 설치, 서울특별시에 편입하였다.

1968년 1월 11일에 뚝도출장소를 폐지하고 관할구역을 성동구 직할로 편입하였다가 1995년 3월 1일 성동구를 중랑천과 동일로를 경계로 하여 성동구와 광진구로 분할,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행정동 15개(중곡 1·2·3·4동, 능동, 구의 1·2·3동, 광장동, 자양1·2·3·4동, 화양동, 군자동), 면적 17.04㎢, 인구 39만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2000 ~ 2010
  • 2008.01.01 노유 1, 2동이 자양 4동으로 통폐합
1980 ~ 1990
  • 1995.03.01 성동구를 광진구와 성동구로 분구
  • 1988.07.01 능동 일부와 광장동 일부를 분할하여 구의 2동을 설치
  • 1985.09.01 자양 1, 2동을 분할하여 자양 1, 2, 3동으로 분동
  • 1980.07.01 중곡 2동을 중곡 2, 4동으로 분할. 송정동을 송정동과 군자동으로 분동
1960 ~ 1970
  • 1978.10.01 중곡 1동을 중곡 1, 3동으로 분할. 자양동을 자양 1, 2동으로 분동
  • 1977.09.01 구의동에서 광장동을 분동
  • 1975.10.01 성동구를 성동구와 강남구로 분구
  • 1973.07.01 잠원, 서초, 양재동, 면목동 일부가 성동구로 편입
  • 1968.01.11 뚝도출장소를 폐지하고 관할구역을 성동구 직할로 편입
1950 ~ 1950
  • 1950.03.15 편입지역 지명 里를 淘으로 개칭
  • 1949.08.13 고양군 뚝도면을 편입하여 뚝도출장소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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